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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과 희빈 장씨 사이에서 태어난 경종은 아버지 숙종과 동생 영조의 긴 재위기간 속에 끼어있는 인물로 약 4년간 재위기간을 가졌으며 숙종과 영조가 치세한 기간이 약 97년으로 거의 한세기를 통치하면서 이런저런 업적과 존재감을 많이 남겼으나 경종은 짧은 재위기간 탓에 이렇다할 업적도 없으며 존재감 또한 상당히 미미한 임금입니다.
그러나 숙종에서 영조로 넘어가는 과정을 설명할 때 경종의 존재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숙종은 인현왕후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었으므로 희빈 장씨였던 후궁의 배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출생 후 100일도 되기 전에 원자로 책봉되었으며 당시 장희빈이 숙종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기에 연잉군과 연령군이 태어나기 전까지 숙종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경종의 유년시절
게다가 장희빈과 남인들의 지지를 받아 어린시절에는 비교적 평탄한 세자시절을 보냈으나 다들 아시는 것과 같이 아버지인 숙종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무수한 환국을 일으켰으며, 어머니인 희빈 장씨도 그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이때 중전이었던 희빈 장씨가 후궁으로 강등되고 다시 인현왕후가 복위되며 경종은 법적으로 인현왕후의 양자가 됩니다. 생모 희빈 장씨의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어머니인 인현왕후를 깍듯하게 모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경종이 성년이 되기 한해전 14세에 희빈 장씨가 인현왕후를 모함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숙종에 의해 사사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때 세자의 신분이었던 경종은 본인을 지지하던 대신들에게 어머니를 살려달라 간청했으나 당시 왕권이 상당히 강했던 숙종에 반문할 수 있던 대신들은 없었습니다.
결국 희빈 장씨는 사사되어 사망했고, 당시 법적으로 인현왕후의 아들이었기에 생모의 죽음에도 인현왕후의 빈소를 지켜야 했습니다.
특히 숙종 말기에는 대리청정을 진행하면서 숙종 문서에서 알아본 것과 같이 노론 대신들과 함께 세자를 폐하고 연잉군을 세자로 책봉할 생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경종은 세자의 신분으로써 대리청정을 했으나 숙종과 노론대신들의 바램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정치에 임하지 않고 내리는 비답들이 모두 아뢴대로 하라는둥 유의하겠다라고만 답을 하며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갑니다.
불안한 정통성
이러한 행보의 배경에는 이복동생인 연잉군과 연령군 모두 후궁 태생이기는 하나 본인 조차도 후궁의 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언제든지 폐세자될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한 듯 합니다.
당시 숙종은 심약하고 강인하지 못한 경종을 못마땅해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이를 눈치챈 노론대신들이 지지하던 연잉군을 세자로 책봉하기 위해 숙종의 가려운 등을 긁어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세자를 지지하던 소론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숙종은 병환으로 몸져 누운상태에서 세자를 교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을 겁니다.
실제로 대리청정을 하면서도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세자가 교체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1720년 아버지 숙종이 승하하면서 왕위를 잇게 됩니다.
만약 숙종이 대리청정 당시 건강이 좋았다면 세자를 폐하고 연잉군을 새로이 세자로 세울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당시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임금의 마음대로 세자를 폐하고 새로이 책봉하는 일은 상당히 무리가 큰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큰 실수없이 세자시절을 보낸 경종을 숙종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내칠 수는 없었습니다. 경종이 숙종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 노론들이 우려한 것과는 달리 숙청이 곧바로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불안한 왕위
그러나 노론대신들은 경종이 즉위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임금으로 대접을 하지 않았으며 경종 또한 건강상의 문제로 몸져누운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게다가 당시 노론들은 임금을 제외한 각종 정치기구들이 모두 노론 대신들의 심복으로 채워져 있었으며 지방에 있는 관찰사나 수령, 병마절도사, 수군절도사도 모두 노론파의 사람들이 한자리씩 하고 있었습니다.
경종이 즉위한 이후 얼마 되지 않아 건강을 문제로 후사가 없는 점을 노려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할 것을 관철시켜 이를 얻어내고, 이후 대리청정까지 요구하게 됩니다.
경종이 대리청정은 거부하여 일이 일단락 되는 듯 했으나 소론대신들 중 김일경이 이를 근거로 노론을 숙청하자는 의견을 상소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바로 숙청이 일어나게 됩니다.
신임옥사
특히 노론파였던 목호룡이 노론대신들을 모함하는 삼수의옥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두번에 걸쳐 노론이 숙청되는 신임옥사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신임옥사를 거치면서 노론대신들이 모조리 숙청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그 자리를 모두 소론이 차지하면서 경종이 재위하는 4년동안 소론대신들은 지속적으로 노론을 숙청하는 피바람이 불게 됩니다.
특히 경종의 가장 큰 업적으로 칭송받는 것이 하나있는데, 바로 동생인 연잉군을 끝까지 믿고 지켜줬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노론이 숙청당하는 신임옥사가 발생했을 때 연잉군 또한 무사하지 못함이 정석이나 경종이 연잉군만은 죄를 묻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소론대신들이 왕세제를 폐하는 상소를 올렸음에도 지속적으로 거부하고 소론대신들을 일갈하여 이에 대한 상소를 아예 차단했으며, 이후 소론대신들은 진노한 경종의 눈치를 살피느라 노론에 대한 공격수위도 낮추는등의 효과를 얻었습니다.
짧은 재위 기간과 병약한 신체때문에 다소 과소평가받는 부분이 있으나 이렇듯 신하들을 필요할 때는 아버지와 같이 휘어잡을줄 알았으며, 지속적으로 노론과 소론이 서로 이간질 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임금의 역할을 다했다는 점은 높이 살 수 있는 부분입니다.
결과적으로 37세의 나이로 즉위 이후 4년만에 승하했으며 당시 후사가 없었음에도 본인과 버금가는 정통성을 가진 연잉군이 왕위를 이을 수 있게끔 왕세제로 책봉한 것이 신의한수로 작용하게 됩니다.
특히 숙종에 가려 빛을 못본 경향이 있지만 세자시절 보여준 정치력은 꽤 괜찮은 수준으로 30년동안의 세자시절이 아니라 더 짧은 기간 세자로 지내다가 즉위했으면 상당히 괜찮은 임금으로 이름을 남길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