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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이홍위 펼치지 못한 왕의 꿈

quickforinformation 2023. 3. 16. 08:27
조선의 6대 임금이자 세종의 손자, 문종의 아들인 단종은 묘호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짧은 기간동안 재위한 인물입니다. 조선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임금이었으나 삼촌인 수양대군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양위하고 결국에는 죽음까지 맞이하게 되는 비운의 임금입니다.

태어났을 때 부터 할아버지인 세종의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며 세종이 승하하고 아버지인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개봉되었으며, 약 2년만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임금으로 어린나이에 즉위를 하게 됩니다.

왕세손과 왕세자 그리고 임금이라는 완벽한 정통성으로 차근차근 임금이 된 단종임에도 불구하고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인 현덕왕후를 잃었으며 할아버지 세종과 할머니 소헌왕후도 모두 단종이 어렸을 때 사망했고, 마지막 남은 아버지마저 즉위한지 약 2년만에 승하하게 되면서 문종이 지명해놓은 고명대신들만 믿고 옥좌에 오르게 됩니다.

임금이 되었을 당시에도 너무 어린나이로 인해 친정을 펼치지 못하고 김종서와 황보인등이 섭정을 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성장하던 도중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게 됩니다.

단종의 생애 이후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삼촌에게 양위를 하고 상왕이 되었으나 단종복위운동등이 각지에서 일어나면서 본인의 치세에 위협을 느낀 세조가 폐위하여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보내고 끝내는 사사하였습니다.

사실 문종에게는 단종말고도 두명의 아들이 더 있었으나 둘 다 어릴때 요절을 하면서 사실상 외동아들로 성장한 단종이 장남역할을 모두 했다고 볼 수 있으며 이미 즉위할 당시부터 내명부의 어른들이 모두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삼촌에 의해 계유정난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단종이 더욱 더 비운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데 보통 섭정을 해줄 내명부의 어른들이 있다면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킬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불행히도 단종에게는 본인이 의지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12세에 임금이 되어 약 1년만에 계유정난으로 인해 실권을 모두 빼앗기고, 15살이 되던해에 옥좌를 삼촌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되었으나 2년 뒤 단종복위운동등으로 인해 세조가 상왕을 폐하고 유배를 보낸 후 사망하게 됩니다.

더군다나 세종과 문종의 유전자를 제대로 물려받았던 탓인지 어릴때부터 단종의 총명함이 뛰어났다고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세종도 그렇고 문종도 그렇고, 단종도 모두 우월한 두뇌를 가진 집안으로 보이지만 모두 단명하는 까닭에 제대로 된 치세를 가진 임금은 세종뿐인 것이 많이 안타깝습니다.

게다가 단종은 적자에다가 적손이었으며 장자, 장손, 세손, 세자, 임금이라는 완벽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총명한 두뇌를 활용해 왕권을 제대로 누렸다면 조선초기 전성기가 조금 더 길게 가지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드는 부분입니다.

사실 단종은 아주 어린나이에 즉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제일 어린나이에 즉위한 것은 아닙니다. 단종의 12세 즉위는 명종 12세, 숙종 14세, 성종 13세, 순조 11세, 헌종 8세 즉위가 사례로 남아 있기 때문에 확실히 내명부에 어른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정난을 방지할 수 있는 확실한 대비책임은 확실해보입니다.

단종에게 본인의 후사를 도모해줄 확실한 후견인이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계유정난은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이쯤되면 아버지인 문종은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단종의 후견세력을 고작 고명대신 두명에게 일임했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문종도 이러한 일이 발생할 것을 미리 예측하고 어느정도 예방하기 위해 힘을 쓰기는 했습니다.

바로 문종이 승하하기 직전에 단종의 세자빈을 유력한 가문의 자제로 간택하라는 명이 내려졌으나 얼마 후 문종의 건강악화로 인해 흐지부지 되어버렸고, 실제 얼마 후 문종이 갑자기 급사하면서 아예 없던일이 되어버린 일화도 있습니다.

그리고 문종의 입장에서는 동생인 수양대군을 전혀 견제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인 세종을 도와서 대리청정을 하며 국정경험을 쌓았고, 그 기간동안에 보여준 여러가지의 업적과 행동으로 인해 왕권이 매우 강한 임금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을 본다면 굳이 수양대군을 견제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맞습니다.

실제로 조선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홀로 임금이 되면서 계유정난을 통해 왕권을 잃고, 삼촌에 의해 살해당하는 단종을 안타깝게 여길 수 있는 부분입니다.

즉, 세종이나 문종이 조금 더 오래 생존해있었거나 단종이 3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친정을 할 수 있었으므로 계유정난이 일어날 수 없었고 할머니 혹은 어머니가 더 오래 살았거나 문종 또는 세종이 계비를 들였더라도 결과는 같았을 것입니다.

또한 고명대신으로 임명된 김종서나 황보인이 수양대군의 쿠데타 가능성을 조금만 더 유심하게 살폈더라도 단종은 폐위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쨋거나 역사적으로 계유정난은 벌어지고 단종은 상왕으로 밀려나고 세조가 즉위를 하게 됩니다.

이후 세조가 임금이 된 이후 약 2년만에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육신 사건이 발생하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상왕의 신분이었던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습니다.

영월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은 약 2년이 지난 후 세조의 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단종의 최후입니다. 이후로도 단종은 묘호도 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노산군이었는데, 이유는 세조 이후의 임금들이 모두 세조의 직계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금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이는 긴 세월이 지난 후 숙종대에 이르러서야 단종이라는 묘호를 받고 임금으로 복위 및 추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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